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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체험휴양마을 바다여행의 어촌 마을을 소개합니다

마을

어촌체험휴양마을 마을

오호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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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시원한 동해바다의 풍경과 함께하는 오호어촌체험마을

푸른 물빛과 고운 모래로 유명한 송지호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오호마을은 방파제 위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모습이 장관이라 새해에는 해맞이 축제가 열리기도 합니다. 매년 8월에는 경치가 좋은 송지호 해수욕장에서 맨손 오징어잡이 축제가 열리며 참가일정에 맞추어 참여하면 맨손으로 오징어를 잡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낚시, 어망으로 고기잡기, 그물보망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습니다. 시원한 동해바다의 풍경과 함께 어촌체험을 즐길 수 있는 가족여행지입니다.

 

 

마을의 유래

우리 마을 오호리는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었으며, 오리진이라고도 불립니다. 옛날 마을근처에 송지호(松池湖), 금지호(錦池湖), 번개, 버덩개, 황포라고 불리던 다섯 가지의 개가 있어 오로리라 칭하였다고 합니다. ‘96년 4월 23일’ 대형 산불로 인해 울창한 주변 송림이 크게 손실되었지만 다시 개간 작업을 시행하여 푸르름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마을의 전통문화

오호리 마을의 전통 어법은 정치망 어법과 채낚시 어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치망 어법은 여러 어법 중에 보통은 유도함정어법을 쓰는 것만을 뜻합니다. 어구를 일정한 장소에 일정기간 부설해 두고 어획하는 어구 ·어법이며, 단번에 대량 어획하는 데 쓰입니다. 연안의 얕은 곳(대략 수심 50 m 이하)에서만 쓰는 어법입니다.
채낚기는 집어등을 이용한 어업으로 이전의 무동력 어선에서는 작업등을 이용한 작은 광력으로 고기를 집어하여 조업하였으나 전등 및 조명의 발달과 어선의 동력화와 함께 본격화 되었습니다. 주요 어종은 오징어, 복어, 갈치를 잡아 올리는 전통어법입니다.
이런 전통어법을 체험할 수 있는 어선이 오호리에 있어 체험이 가능합니다.

 

 

마을전설

고성군 죽왕면에는 기와조각만이 나뒹구는 적곡사의 절터가 폐허로 남아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적곡사지는 고려 초 한 고승이 이곳을 지나다 온천을 발견하여 절을 세웠다고 합니다. 이곳에 절을 세우자 신도들이 찾아와 절이 점점 번창해 갈수록 절에서 승려들은 게을러지고 수도에 힘쓰기보다는 허영에 들떠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탁발승이 찾아와 하룻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탁발승은 이절의 승려들에게 깨우침을 주고자 “앞으로 3년동안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방탕한 생활을 하면 부처님의 노여움을 사리라”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 후 절에 빈대들로 인해 생활이 곤란하자 승려들은 3년 후에 만나기로 하고 절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힘든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깨우치지 못하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만 했습니다. 3년 후 중들은 마당에 모여 그동안의 고생을 이야기하면서 빈대가 없어진 절 주변을 돌아보며 서로 기뻐하였습니다.

중들이 법당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부처님 앞에 난데없이 금주(金柱)가 서 있었다. 중들은 자기들의 3년동안 고생을 불쌍히 여겨 부처님이 하사하신 금기둥이라 믿고 기쁜 마음에 와락 끌어안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천둥과 함께 금기둥은 무너지고 기둥에 매달렸던 중들은 그 밑에 깔려 죽었습니다. 그 기둥은 금기둥이 아니고 빈대들이 3년동안 부처님 앞에 응결되어 하나의 커다란 기둥을 이룬 빈대기둥이었던 것입이다.

이처럼 적곡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남긴채 그 흔적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마을을 빛낸 사람들

고성군 죽왕면의 인물은 함희석으로서 함희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함희석 효자각이 1869년에 건립되었습니다. 효자 함희석은 부모가 병환으로 눕게 되자 바다에 헤엄쳐 나가 귀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였습니다. 하루는 천화(天火)로 집안에 큰불이 나 부모가 큰 화상을 입어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지성으로 부모를 보살피는 등 효성을 다하였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부모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범의 호위아래 시묘를 살았습니다. 보기 드문 효자로 인정하여 조정은 그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효자각을 내렸고 이를 널리 알리고자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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