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내용 바로가기
레프트 메뉴
pageLinkNav 빌드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바다여행 도서관

바다여행 도서관에서 만나는 넓은 바다!

바다여행에서 제공하는 바다자료실, 이달의 바다정보, 바다와 이야기 등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들을 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바다와 이야기

바다와 이야기 조회
여수 3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5-03-18 조회수7937
첨부파일 파일 다운로드  marine_img.jpg (다운로드 5 회)
여수 3 boardView22
그렇다면 우리의 ‘밤바다 여수’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밤바다의 여수, 즉 여수 구도시는 안타깝게도 일제강점기의 도시개발을 통해 그 물리적인 체계와 모습이 완성되었다. 여수는 1910년대를 시작으로 수산업의 생산활동, 한반도 내륙의 철도교통과 연결된 대일본 해운의 거점, 이후에는 일본의 태평양전쟁(Pacific War, 1941-1945)을 위한 군사기지로서 기능들을 단계적으로 수행해온 결과이다.
 

 

 

여수 - #3

 

철도역-항구의 연결도시

 

 

 

 

수변의 매립과 여수구도시

 

여수의 이러한 도시변화는 무엇보다 거대한 간척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그러한 결과는 개조된 해안선에서 명확하게 확인된다.  해안의 매립이 진행되기 이전의 ‘조선말의 여수’는 현재의 여수지도에서 확인이나 상상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 규모와 형태가 크게 상이하다.  특히 여수의 일본인들은 한국인과의 토지소유권의 충돌과 분쟁을 최소화하며 항구수변과 거대농지를 조성하려는 목적으로 연등천(蓮燈川)의 주변과 종포(鍾浦)의 해안, 그리고 배후의 광양만 갯벌을 간척하였다.

 

일본인들이 본토에서 축적한 수변매립과 토목사업의 기술과 경험은 오사카와 도쿄의 원?구도시에 형성된 항구와 수로의 변화를 통해서도 쉽게 관찰된다.  당시 일본의 매립시공과 토지개발사업의 경쟁력과 자본력은 일본을 근대화한 네델란드의 그것보다도 앞섰을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여수의 해안매립은 1910부터 일본의 민간기업들에게 매우 좋은 투자대상이었다.

 

매립으로 만들어진 여수의 중앙동에는 여수의 항구와 철도, 도시중심부가 조성되었으며, 또한 배후의 대포리와 소라면에는 소라천과 쌍봉천을 중심으로 거대한 기업농장이 작동하였다.  당시 진행된 여수의 대표적인 매립사업은 여수구항의 부지매립(1907년), 진남관 주변의 중앙동과 교동의 수변 매립(1914-1916년), 진남관 남쪽의 중앙동부터 자산 해안까지 갯벌매립(1917-1933년), 여수신항의 부지매립(1935년)이다.

 

여수 구도시는 이러한 해안의 매립사업들을 통해 종고산 서쪽의 도시중심구역인 본정(本町), 연등천을 따라 여수서초교와 공장구역의 서정(西町), 그리고

종고산 서쪽부터 동북쪽의 여수신항까지 주거, 항구, 동시장의 동정(東町)으로 구분되었다.  물론 당시 서정, 본정, 동정은 여수구항의 중앙동 로터리에서 공화동의 여수역과 여수신항까지 연결하는 중심상업가로인 본정통(本町通/Hon Machi, 현재 중앙로)와 동문로를 따라 선형으로 연결되어 점차 서쪽과 동쪽으로 확장하였다.

 

당시 여수 구도시의 행정거점은 본정통(중앙로)-동문로의 중간 연결점인 현재 여수경찰서 부지에 있던 광주경무소 여수경찰분소(1906년)와 인접한 광주지방법원 여수등기소(1917년)였다.  현재 동문동우체국 부지에는 당시 목포우편소 여수우편취급소(1906년, 이후 여수우체국)가 기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중앙동의 현재 SC제일은행 건물은 당시 광주농공은행 여수지점(1912년)이다.

 

한편 여수의 얼굴이었던 종고산 남사면의 전라좌수영성은 1910년을 전후로 해체되었으며, 성벽이 해체된 구릉지들을 따라서 주거지가 조성되었다.  전라좌수영성내의 수군절도사 사무소인 운주헌(運籌軒)은 1897년부터 여수군청으로 사용되었으나 1917년 화재로 전소되었다.  이 시기에 여수의 상징건물인 진남관(鎭南館)은 여수공립보통학교(1911년, 현재 연등천변의 여수서초교)와 여천공립심상소학교(1939년, 현재 공화동의 여수동초교)가 사용되었으며, 해방 후에는 여수중학교와 여수야간중학교가 입지하였다.

 

당시 한국인 커뮤니티의 생활거점은 서정의 연등천변에 조성된 서시장(西市場 1934년)으로 여수5일장과 가축시장을 겸한 여수의 가장 큰 시장으로 번성하였다.  한편 여수 구도시는 1910년부터 본격화된 일본정부의 이민정책에 따라 일본어민들의 여수정착이 1930년까지 진행되었으며, 이 시기를 전후로 여수면의 일본인 인구는 최고치인 약 3,000명에 육박하며 여수면 인구의 약 1/4를 구성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일본인들은 이민정착 초기인 1910년대에 종포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했으며, 이후1920년대를 지나면서 종고산과 자산 사이의 현재 동정동의 격자형 도시블록, 그리고 연등천을 넘어 봉산동의 남산 주변으로 커뮤니티를 확장하였다.  당시 일본인 커뮤니티의 상징적 중심부는 현재 여수기상대 부지에 조성된 여수신사(1918년)였다.  이후 여수신사는 1940년 현재 여수공업고교-종고중교 부지로 확장 이전하였으며 일본사찰인 정행사(正行寺)가 중앙동에 입지하였다.  또한 현재 동문동우체국 동쪽으로 여수 최초의 상설시장인 동시장(東市場, 1932년)이 조성되었고, 여천공립심상소학교(1939년, 현재 공화동의 여수동초교)가 커뮤니티의 거점으로 기능했다.

  

여수구항, 전라철도선, 여수신항

 

여수는 종포 해안의 갯벌들이 굴착되고 매립되어 최대 2,000 t 급 선박을 수용하는 여수구항/내항(1908년)을 조성하였다.  이에 여수구항에는 초기에 여수-부산의 부정기 화물선(1908년)을 시작으로 이후 부산정기항로선(1910년)이 운항하였으며, 또한 목포-여수-부산-오사카를 연결하는 여객페리선도 1923년부터 월4회 운항하였다. (우승환 외, 2011)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1910년부터 조선총독부 산하 식산국의 주도도 여수가 수산물생산의 거점으로 성장한 것이다.  한편 여수에는 목포세관 산하의 여수감세서(1911년, 이후 여수세관)이 조성되어 항구로서 해운행정을 시작했으며, 여수구항은 1918년 조선총독부가 직접 항만공사와 항만행정을 관리하는 ‘지정항’이 되었다.

 

당시 여수구항의 동쪽으로 종화동의 수변(현재 여수해양공원 주변)에는 키조개 통조림공장(1914년)을 포함한 어업조합들이 여수수산시장(1926년, 현재 여수선어시장)을 중심으로 수산업생산과 유통상권을 구축하였다.  이 시기에 여수의 국동에는 수산생산의 근대교육과 전문인력 양성을 위한 여수공립간이수산학교(1917년, 이후 여수수산대학교이며 현재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가 설립되었다.

 

여수에는 조선총독부의 ‘치도(治道) 10개년 계획’ 하에 여수와 순천을 연결하는 신작로(1910년, 현재 국도17번과 유사함)이 조성되었다.  또한 여수는 1920년대부터 1930년대초까지 광려철도선/전라철도선의 종착역인 여수역(1930년)과 여수신항/외항(1930년)이 남조선철도회사의 주도로 함께 조성되었다.

 

여수신항의 개발계획은 원래 1923년부터 여수구항의 확장을 목적으로 여수역과 여수수산물시장의 조성사업과 함께 수립되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중앙동과 교동의 부지확장의 어려움으로 공화동과 수정동의 해안에 신항조성이 계획되었다. 이에 따라 여수신항은 현재 여수엑스포 행사장(2012년) 부지에 대규모 매립사업으로 최대 3,000 t급 선박의 정박시설과 방파제가 조성되었으며, 인접하여 세관검사소, 보세창고, 화물창고 등이 조성되었다.

 

여수신항의 조성으로 기존의 구항과 신항의 기능들이 상호간 분화되었다.  먼저 여수구항은 여수만을 중심으로 수산물의 집산유통과 여객운송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여수신항은 1931년 여수-시모노세키(下關/Shimonoseki)와 여수-하카다(博多/Hakata)의 여객노선들이 운항하며 대일본 도시들의 무역항으로 성장하였다.

 

한편 여수신항은 현재 여수엑스포 중심광장 부지에 한반도의 최남부 철도종착역인(구)여수역(1930년)과 여수항역(1937년)이 조성되어 광려철도선(광주송정리-순천-여수, 1930년) 함께 기능하였다.  이에 여수신항의 주변해안에는 호남의 쌀, 면화, 수산물을 처리하고 보관하는 정미소, 면화공장, 창고 등이 성업하였으며, 일본인 자본으로 조성된 조선소들이 다수 작동하였다.

 

여수는 당시 서해의 군산과 익산으로부터 호남지역을 가로지르는 ‘광주-순천-여수’의 육상철도선, 그리고 ‘나주-목포-여수’의 해운교통이 남해의 여수신항으로 정교하게 통합된 거대한 내륙-해안의 대일본 운송시스템으로 기능하였다.  한편 여수역은 최근 2009년 KTX역으로서 덕충동의 엑스포 행사장으로 이전하여 새롭게 조성되었다.

 

 

 

   

 여수 연등천에서 본 여수구항의 해양공원(왼쪽), 거북선 대교, 돌산도(오른쪽), 2012

 

  

여수 자산의 충무정(중앙), 여수구항, 남산(먼 배경), 2012

 

 

* 본 원고에서 지명, 인명 등은 최대한 원어식 이름(예를들면, 중국 도시인 항주는 ‘항조우(杭州/Hangzhou)으로 표기되었습니다.

 

 

※ 위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작가의 허락없이 저작물을 퍼가거나 사용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