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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이야기

바다와 이야기 조회
순천 1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5-03-18 조회수6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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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1 boardView22
순천은 역사 속에서 근대시대까지도 서울을 보지 않았던 도시이다. 순천은 갯벌과 바다를 통해 남쪽으로 여수, 서쪽으로 낙안-보성-화순-광주, 동쪽의 광양, 그리고 필요 시 북동쪽의 내륙으로 보성성과 섬진강을 따라 산지의 내륙거점들인 구례-곡성-남원과 연결되었다. 이에 순천은 산, 들, 벌, 바다의 물산이 모이는 풍요로운 시장이었다.
 

 

 

순천 - #1

 

 

동천과 순천만

 

 

 

순천(順天, SoonChun)은 ‘∩’형의 형태로 동-북-서 방향이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남쪽 바다를 멀리 보며 열려있는 깊고 가파른 지형의 계곡이었다.  이곳은 특히 북쪽 계족산(鷄足山, 729 m)/닭발산에서 흘러 내려온 동천(東川)이 분지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10 km를 지난 후 갯벌의 순천만/여자만으로 흘러가는 길고 넓은 들이었다.  이것이 순천이 역사 속에서 모래드리, 사평(沙平), 승평(昇平), 그리고 평양(平陽)으로도 불려왔던 이유이다.

 

따라서 동천은 순천의 얼굴이며, 또한 순천을 몽환의 안개로 깊게 덮어버리는 베일이기도 했다.   동천은 북쪽 석현천(石峴川)을 만나며 순천의 시작점을 형성했고, 이후 옥천(玉川/沃川)을 지나며 순천의 중심부를 정의했으며, 남쪽 이사천(伊沙川)과 만나 범람지에 평야를 만들었다.  이후 동천은 남쪽 바다의 갈대밭과 갯벌로 이어졌으며 남쪽의 적금도(積金島)까지 원형의 넓은 순천만을 완성하였다.

 

한편 이 지역의 만조 때 폭우는 동천의 범람으로 연결되어 순천에 큰 홍수를 자주 발생해 왔다.  순천은 유럽의 젖줄인 라인강(River Rhine) 하구의 홀란드(Holland)의 저지대와 아메리카 대륙의 미시시피 강(Mississippi River) 하구의 뉴올린즈(New Orleans)처럼 범람원에서 수마를 겪으며 성장해온 도시이다.

 

순천은 이러한 물리적 특성으로 한반도 내륙으로부터 육상접근이 제한되어 왔으며, 이에 독립된 호남의 지역문화권을 조성해왔다.  또한 순천은 기온이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강수량이 많은 해양성 기후를 갖고 있어, 종종 중국 양쯔강(揚子江, Yangtze River) 남쪽의 강남에 비유되어 ‘소강남(小江南)’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실제로 순천은 역사 속에서 근대시대까지도 서울을 보지 않았던 도시이다.  순천은 갯벌과 바다를 통해 남쪽으로 여수, 서쪽으로 낙안-보성-화순-광주, 동쪽의 광양, 그리고 필요 시 북동쪽의 내륙으로 보성성과 섬진강을 따라 산지의 내륙거점들인 구례-곡성-남원과 연결되었다. 이에 순천은 산, 들, 벌, 바다의 물산이 모이는 풍요로운 시장이었다.

 

순천은 이미 조선 영조 때에 인구 41,000명의 지역 거점이었으며,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말에는 인구 100,000명의 도시였다.  순천은 이 시기부터 성읍시장(중앙시장), 웃장(신시장/북부시장), 아랫장(옥천남시장/동천시장/남부시장), 역전시장 등이 서로 경쟁하며 성장해왔던 농수산물의 집산지이다.

  

백제의 읍치와 순천만의 대대포구

 

순천이 이 지역에서 처음 두각을 나타낸 것은 백제 때일 것이다.  백제의 순천은 보성강의 충적지를 포함해 감평군(?平郡, 嵌平郡) 또는 사평군(沙平郡)/무평군(武平郡)라고 불렸다. 

 

당시 백제의 치소는 원도시인 현재 순천부읍성 부지에 조성되었고, 이를 방어하는 산성들이 순천의 진산인 남쪽의 인제산(麟蹄山, 346 m)/건달산(建達山)/남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방향에 조성되었다.  이후 통일신라의 순천은 757년(경덕왕 16)은 승평군(昇平郡)/승주군(昇州郡)이라 불렸다.

 

순천 남쪽으로 해룡산 구릉의 해룡산성(海龍山城)은 후백제의 유력자이며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가 지배한 이 지역 호족의 활동거점이었다.  특히 해룡산성은 동천 동남쪽 순천만의 무역항이었던 대대포구를 방어하는 요새였다. 

 

당시 대대포구는 흥미롭게도 동천을 통해 내륙의 사비포(동천교와 팔마대교 사이에 입지)까지 연결되었고, 해창리의 이사천(伊沙川) 하류의 용두항(龍頭港) 부근에는 고려의 대표적인 13개 조창중의 하나인 해룡창(海龍倉)이 기능하였다. 

 

고려의 해룡창은 이 지역의 세곡을 모아두는 창고로서, 남해-서해의 바닷길을 통해 수도인 개성의 경창(京倉)으로 연결되었다.  현재 순천시는 2013년부터 순천구도시와 순천만을 연결하는 이 동천의 하천정비와 수로복원계획을 추진 중이다.

 

 

   

죽도봉 공원에서 바라보는 순천의 동천과 순천 남부, 2013

 

 

 

   

순천 순천만,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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